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빈 게이 (문단 편집) == 연예계 활동 == 초창기에는 태미 태럴[* 1945~1970. 모타운에서도 손꼽는 젊은 여성 가수였으나 (마빈보다 6살 연하다. 데뷔 당시 14살이었는데, 타 레이블에서 활동하다가 이적한거라 듀엣 자체는 1967년에서야 했다.) 뇌종양으로 인해 만 24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마빈 게이와 함께 부른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로 잘 알려져 있다. 태미의 요절은 마빈에게 상당히 충격이었고, 마약 중독의 늪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이나 타 [[모타운]] 가수들과 활동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 시절의 히트곡으로는 [[Pride and Joy]] (1963), Try It Baby (1964), [[How Sweet It Is (To Be Loved by You)]] (1964), [[I'll Be Doggone]] (1965), [[Ain't That Peculiar]] (1965),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1967), [[Your Precious Love]] (1967), If I Could Build My Whole World Around You (1967), [[Ain't Nothing Like the Real Thing]] (1968), [[You're All I Need to Get By]] (1968),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1968), [[Too Busy Thinking About My Baby]] (1969), [[That's the Way Love Is(마빈 게이)|That's the Way Love Is]] (1969) 등이 있고, 모타운 특유의 프로듀싱과 가창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가 1971년 동생의 [[베트남 전쟁]] 참전과, 듀엣으로 함께 20세기 최고 명반을 만들어냈던 짝꿍인 태미 테럴의 사망을 통해 충격을 받아 만든 [[What's Going On]]이라는 앨범을 내놓으면서 전설의 위상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스티비 원더]]와 함께 모타운 레코드의 중흥을 이끌고 가사에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는 파격적인[* 당시 모타운 소속 가수들의 노래는 팝적인 사랑노래가 대부분이였다.] 곡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음악적으로나 메시지적으로나 기존 [[소울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에 [[베리 골디|모타운 사장]]은 이런 음악은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난색을 표했지만 마빈 게이는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켰으며, 결국엔 성공시켰다. 이는 후대 흑인 음악계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이후 낸 Let's Get It On 앨범은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색이었다. 선지적이고 사회비판적이었던 전작과 달리, 다분히 성(性)적인 세속적 주제를 토대로 하였다. 이미 경지에 오른 뮤지션답게 완벽하게 자신의 색을 입혀 섹슈얼한 음악의 상징적 존재로 굳건히 자리잡게 된 앨범이기도 하다. 또 [[Let's Get It On|동명의 타이틀 곡]]은 베드송으로 가장 많이 리퀘스트 받는 넘버이기도 하다. 음악적으로도 다양한 악기들과 부드러운 하모니 등 가히 [[소울 음악|소울]]의 질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을 들었으며 타 레이블에서 활동하던 [[오티스 레딩]], [[앨 그린]], [[커티스 메이필드]]나 [[아이작 헤이즈]][* [[사우스 파크]]의 '셰프' [[제롬 맥엘로이]] 역을 맡았던 그 사람 맞다.]와 더불어 [[소울 음악|소울]]이라는 장르에 천지개벽을 불러일으켰다. 가창력의 수준은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 일도 드물지 않으며, 특유의 유려하고 부드러운 창법과 색채가 뛰어나 지금도 수많은 남자가수들이 영향을 받고있고, 또한 존경을 표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